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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를 보다가 해를 보고 말았다

admin 2026-06-24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를 보다가 해를 보고 말았다

제목을 잘못 골랐나 싶을 때가 있다

요즘 밤에 잠이 통 안 와서 뭘 좀 볼까 하다가 카카오웹툰을 켰다. 사실 이런 거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 웬만하면 안 건드리려고 했는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지. 그냥 맛만 보자는 생각으로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를 눌렀다. 썸네일 그림체가 예쁘기도 했고, 평소에 이런 궁중 암투물이나 회귀물 같은 걸 딱히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도 이상하게 그날따라 그런 분위기가 끌렸다. 1화만 보고 자야지, 딱 1화만. 그 다짐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스스로 잘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버튼을 누르게 된다.

1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기분

내용은 대충 짐작 가능한 흐름이었다. 주인공이 어쩌다 보니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서 고생하다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런 이야기. 처음에 도입부를 읽을 때는 좀 뻔한 거 아닌가 싶었다. 예전에 봤던 ‘연희공략’ 같은 드라마들이 자꾸 겹쳐 보여서 아, 이거 또 비슷한 전개겠네 싶어서 끄려 했다. 그런데 이게 참 묘하다. 그림체가 너무 화려해서 그런지, 아니면 연출이 속도감이 있어서 그런지 다음 장을 넘기게 되는 힘이 있더라. 500원 내외 하는 대여료가 아깝지 않게 느껴질 때쯤에는 이미 밤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왜 끊지 못하고 계속 보게 되었을까

한 10화쯤 읽었을 때는 이게 단순히 재미있어서라기보다 주인공이 살아남는 걸 지켜보는 게 약간 내 현실이랑 오버랩되면서 몰입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상사한테 깨지고 집에 와서 아무 생각 없이 만화 속 주인공이 권력 다툼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걸 보고 있자니, 뭐랄까 묘한 위로가 된다고 해야 할까. 현실은 이렇게 도망칠 구멍도 없는데, 여기는 적어도 주인공이 지능적으로 위기를 해결하니까 속이 다 시원했다. 사실 내용 자체는 엄청나게 새로운 건 아닌데, 그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밤늦게 보기엔 딱이었다. 옆에 둔 커피가 다 식어버린 것도 모르고 스크롤을 내렸다.

대여료 결제의 굴레와 멍해지는 머리

어느덧 새벽 4시가 넘었다. 처음엔 무료 회차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캐시를 충전하고 있었다. 3만원 정도면 꽤 많이 볼 줄 알았는데, 요즘 웹툰 가격이 생각보다 금방 사라지더라. 30화, 40화 이렇게 넘어가니까 주인공의 처지가 내 처지랑 섞이면서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자야 하는데, 다음 화에 주인공이 황제 앞에서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서 손가락이 멈추질 않았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옆에서 보던 고양이가 하품을 하는데, 나도 따라 하품을 하다가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낸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왜 매번 같은 실수를 하는 건지 스스로가 좀 한심하기도 했다.

아침 햇살을 마주했을 때의 공허함

창밖이 푸르스름해지더니 결국 해가 뜨기 시작했다. 70화 정도까지 읽었나. 눈이 너무 뻑뻑해서 더는 읽을 수가 없었다. 핸드폰을 던져두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올 리가 없지. 머릿속엔 온통 황궁의 암투와 등장인물들의 대사만 맴돌았다. 다 보고 나면 뭐 남는 게 있을까. 그냥 시간 잘 보냈다, 하고 끝내야 하는데 괜히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다. 출근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데, 방금 읽은 웹툰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날 것 같은 기분이다. 다음에 읽을 때는 정말 딱 5화만 읽고 자야지 다짐하지만, 어제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다음 화가 궁금해서 어플을 다시 켤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그냥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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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달빛연못 2026.06.24

    그림체가 화려해서 몰입하기가 정말 쉽더라구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음 페이지를 보게 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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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툰 주인공이 비슷한 상황에 놓인 것처럼 느껴져서, 잠시 현실에 대한 생각이 잊혀지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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