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보니 예전 무협 만화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 요즘 나오는 세련되고 깔끔한 채색의 신작 웹툰들도 재미있는 게 많지만, 가끔은 굳이 옛날 특유의 거칠고 묵직한 흑백 감성이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 퇴근길 9호선 급행열차의 빽빽한 사람 틈바구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간신히 쥐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예전 학창 시절에 동네 허름한 만화방이나 도서대여점에서 퀴퀴한 종이 냄새를 맡으며 한 권씩 빌려 보던 만화들이 요즘 세상에는 다 디지털화되어 어디선가 서비스되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지하철 안에서 폰을 켜고 초록창에 검색을 해보니 이게 플랫폼마다 올라온 형태가 제각각이었고, 어떤 건 아예 검색 결과에도 나오지 않아서 시작부터 살짝 힘이 빠졌다.
어릴 때 빌려 보던 무협지의 흐릿한 기억과 모바일 화면
지하철 안에서 흔들리는 화면을 보며 예전에 완결을 보지 못했던 무협 만화의 제목을 검색창에 입력했다. 분명히 머릿속에는 주인공의 얼굴과 몇몇 명장면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플랫폼마다 판권이 다른 건지 검색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 어떤 곳은 1부만 제공하고 있었고, 다른 곳은 외전만 덜렁 올라와 있는 식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은 너무 작아서 옛날 단행본 특유의 2페이지짜리 거대한 액션 컷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할 텐데, 이걸 굳이 폰으로 좁게 봐야 하나 싶은 회의감이 가장 먼저 들었다. 게다가 지하철 안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작은 글씨를 읽으려니 눈이 벌써 피로해지는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그냥 책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보기만 해도 세네 시간이 훌쩍 지나갔는데, 이제는 모바일 화면으로 그 감흥을 다시 느껴보려니 시작하는 단계부터 사소하게 거슬리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네이버 시리즈와 카카오페이지를 번갈아 오가며 겪은 결제 단위의 불편함
결국 집으로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 시리즈 앱을 번갈아 켜가며 가격과 분량을 비교해 보았다. 대개 회당 대여는 300원 정도였고, 평생 소장하는 데는 500원 선이었다. 낱개로 몇 편만 결제해서 볼 때는 그리 큰돈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완결까지 70권이 넘어가는 장편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려면 돈 몇만 원은 우습게 깨지는 구조였다. 게다가 각 플랫폼마다 사용하는 가상 화폐의 충전 단위가 달라서 짜증이 났다. 만 원이나 이만 원 단위로 충전해 두면 꼭 몇백 원씩 애매하게 잔돈이 남아서, 나중에 쓰지도 못하고 계정에 묶여 있게 되는 게 늘 불만이었다. 그렇다고 딱 필요한 권수만큼만 정밀하게 결제할 수 있는 방법도 마땅치 않아서, 결국 필요 이상으로 초과 충전을 해두고 결제 버튼을 눌러야 했다.
스크롤 방식의 웹툰과 옆으로 넘기는 스캔 만화책의 미묘한 이질감
작품을 골라 결제를 마치고 뷰어를 열었는데 여기서 또 한 번 미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요즘 모바일 환경에 맞춰 위아래로 길게 늘어뜨려 재편집한 스크롤 형태의 웹툰 버전이 있는가 하면, 옛날 단행본 책장을 그대로 스캔해서 올려둔 페이지 넘김 방식의 버전이 따로 있었다. 예스24에서 이북으로 사서 전용 뷰어로 볼 때와 네이버 시리즈 앱 안의 기본 뷰어로 볼 때의 화면 비율도 꽤 달랐다. 예스24 이북 뷰어는 태블릿 화면에 맞춰 양면 보기가 편하게 설정되어 있었지만 스마트폰으로 볼 때는 글씨가 눈곱만 하게 보여 매번 화면을 두 손가락으로 늘려야 했다. 반면 네이버 시리즈 앱은 스크롤 방식이라 손가락만 쓱쓱 올리면 되니까 편하긴 한데, 원작자가 원래 의도했던 컷 분할이나 연출의 긴장감이 다 깨져서 밋밋한 그림 나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백 퍼센트 마음에 들지 않아 이리저리 설정만 만지작거렸다.
새벽 2시에 화질 문제로 포기하고 불을 껐던 순간
결국 침대 모퉁이에 비스듬히 엎드려서 새벽 2시 반이 넘어가도록 패드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잠은 오는데 왠지 결제해 둔 돈이 아까워서 몇 화라도 더 보고 자겠다는 오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반부 에피소드들을 지나 중반부로 갈수록 스캔본의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졌다. 어떤 권수는 인쇄 상태가 원래 불량했던 책을 그대로 대충 스캔했는지 잉크가 번져서 인물들의 대사가 흐릿하게 보였고, 선들도 군데군데 뭉개져 있었다. 정당하게 돈을 내고 구매해서 보는 디지털 콘텐츠인데도 불구하고, 옛날 인터넷 초창기에 파일공유사이트에서 굴러다니던 조악한 뷰어로 만화를 보던 시절보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허탈했다. 눈은 점점 더 침침해지고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손목도 저려와서, 결국 20화 남짓을 남겨두고 화면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서재에 쌓아두기만 하고 다시 열어보지 않게 되는 현실
그날 밤에 충동적으로 결제해 둔 몇십 화의 유료 만화들은 여전히 내 앱 안의 보관함 한구석에 그대로 잠들어 있다. 언제든지 다시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한 번 흐름이 끊기고 나니 다시 손이 가지 않는다. 남은 분량을 환불하자니 절차가 번거롭고 액수도 애매해서 그냥 두고는 있는데, 볼 때마다 아까운 마음에 씁쓸한 기분이 든다. 요즘 같은 세상에 책방을 직접 찾아갈 필요도 없이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옛날 만화를 손쉽게 구해볼 수 있다는 건 참 편리한 세상이 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돈은 돈대로 쓰고 예전의 그 몰입감과 재미는 반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아 헛헛하다. 다음에 또 옛날 무협지가 생각나더라도 선뜻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 이 텁텁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플랫폼마다 뷰어 방식이 이렇게 달라서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그림 보는 느낌이 너무 달라요.
답글
가격 비교하느라 머리 아팠어요. 70권 넘는 장편은 진짜 부담될 것 같네요.
답글
스캔본 상태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게 정말 안타깝네요. 옛날 만화책처럼 잉크가 번져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건 정말 답답한 일 같아요.
답글
모바일 화면으로 보는 건 조금 답답하더라구요. 예전 단행본처럼 펼쳐서 보는 게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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