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사를 결심했던 이유
요즘 들어 웹소설 원작 드라마들이 하도 많이 쏟아져 나오길래, 나도 문장력 좀 길러볼까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괴담 출근’ 같은 작품들도 웹툰화가 된다고 하니 괜히 나도 내 손으로 직접 문장을 옮겨보고 싶더라고. 정식으로 카카오페이지에서 캐시를 꼬박꼬박 내고 보던 거라, 그냥 내가 혼자 연습용으로 타이핑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무작정 시작했다. 사실 텍본이니 뭐니 해서 법적 처벌 얘기도 돌아다니지만, 나는 유포할 목적이 전혀 없으니 내 개인용 노트북에 저장해두고 시간 날 때마다 타자를 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노트북 앞에서 보낸 무의미한 시간들
처음에는 무슨 작가라도 된 것처럼 비장하게 시작했다. 좋아하는 문장을 그대로 받아 적다 보면 뭔가 배우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근데 막상 해보니 그냥 글자 옮기기 노동에 가깝다. 특히 문장 호흡이 긴 작가들 거를 옮기다 보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어질 때가 있다. 내가 보려고 샀던 전자책 기기는 옆에 던져두고 굳이 노트북으로 옮겨 적는 이 행위가 과연 실력이 늘긴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시간 낭비인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어떨 때는 그냥 소설을 읽는 게 훨씬 재밌는데 굳이 ‘공부’라는 명목으로 노동을 자처하나 싶기도 하고.
캘리그라피를 곁들이면 다를 줄 알았는데
타이핑만 하니까 너무 심심해서 캘리그라피 글씨체를 찾아보다가 결국은 펜을 잡았다. 근데 이건 또 다른 문제다. 아이패드로 사각사각 소리 내며 쓰면 힐링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써놓고 보면 내 글씨체가 마음에 안 들어서 한 문장을 열 번씩 다시 쓴다. 내가 생각한 그 ‘감성적인 느낌’이 안 난다. 글씨체 연습하다 보면 또 문장 내용이 눈에 안 들어오고, 글에 집중하다 보면 글씨가 삐뚤어진다. 2시간 동안 3페이지 정도 옮기다가 결국 팔만 아파서 관뒀다. 밖에서 사진 찍는 법 강의 듣는 것보다 이게 더 고난도인 것 같다.
사진 찍는 법이랑 비슷한 건가
예전에 어디 가서 사진 잘 찍는 법 같은 거 강의 들었을 때도 그랬다. 라이트룸 프리셋 다 적용해보고 좋은 카메라 들고 있어도 결국 찍는 사람이 문제였던 것처럼, 남이 써놓은 좋은 글을 옮겨 쓴다고 내 문장력이 좋아지는 건 아니라는 걸 벌써 깨닫고 있다. 그냥 글을 읽을 때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직접 타이핑해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얼마나 치열하게 깎여서 나온 건지 느껴지긴 한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이걸 계속해서 뭘 얻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결론 없는 하루의 마무리
결국 어제도 노트북 앞에 앉아서 한 30분 깔짝거리다가 말았다. 이렇게 해서 나중에 내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좋아하는 작가님들 글이나 편하게 읽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까. 사실 필사라는 게 성실함의 증거라는데 나는 전혀 성실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다가 지루하면 관두는 게 내 방식인 듯하다. 오늘도 노트북은 켜져 있는데, 화면 속에 띄워놓은 소설의 첫 문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이걸 다 옮겨 적는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뭐, 일단은 저장 버튼을 눌러놓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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