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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속에 처박아뒀던 열혈강호 단행본을 다시 꺼내 읽었다

admin 2026-07-01
서랍 속에 처박아뒀던 열혈강호 단행본을 다시 꺼내 읽었다

30년 넘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무게감

거실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책장을 정리하다가 90년대에 샀던 만화책들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건 단연 ‘열혈강호’였다. 1994년부터 시작했다니 벌써 32년이다. 요즘은 무협 웹툰이나 소설 사이트를 뒤져보기도 하지만, 역시 종이 책장을 넘길 때의 그 질감은 대체하기가 어렵다. 처음에는 이 만화가 이렇게까지 길게 연재될 줄은 몰랐다. 한비광과 담화린이 이렇게 오래도록 엮일 줄 알았으면 아마 진작에 전권을 모아두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사 다닐 때마다 이 무게 때문에 꽤 고생했으니까. 20권쯤에서 멈췄던 것 같은데 지금은 90권이 훌쩍 넘었더라. 최근에 나온 94권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막상 다시 읽으려니 어디서부터가 기억인지 헷갈린다.

무협 용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오후

다시 정주행을 하려니 생각보다 무협 용어들이 생소하다. 예전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읽었던 기공, 혈도, 강기 같은 말들이 요즘 다시 보니 괜히 어렵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어릴 땐 아무 생각 없이 ‘와, 세다’ 하고 넘겼는데 지금은 주인공이 쓰는 기술의 원리를 나름대로 추론하게 된다. 요즘 나오는 무협 웹툰들은 설명을 워낙 친절하게 해줘서 진입 장벽이 낮지만, 옛날 만화는 그런 거 없다. 그냥 ‘이게 절기니까 대단한 거다’라고 말하면 독자도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 세시소프트 같은 곳에서 게임으로 만들어서 서비스하고, 모바일 방치형 RPG로도 나온다고 하던데 그런 것들을 하면 이런 용어들이 좀 더 익숙해질까 고민도 잠시 해봤다. 하지만 굳이 게임까지 깔아서 캐릭터를 키우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나는 만화가 좋다.

무료 만화방을 찾다가 결국 다시 종이책으로

사실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무료 무협 만화를 볼 수 있는 사이트를 좀 뒤져봤다. 예전에 즐겨 찾던 무료 만화방 같은 곳들이 다 유료화가 되거나 서비스가 종료된 지 오래다. 어떤 곳은 ‘무협 추천’이라면서 낚시성 광고만 가득하고, 막상 클릭하면 첫 화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다 결제해야 한다. 그 돈이 아까운 건 아닌데, 웹툰 특유의 세로 스크롤 방식이 종종 피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결국 내 손에 잡히는 건 낡고 바랜 단행본들뿐이다. 한 권에 5천 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얼마쯤 하려나. 서점에 가도 이런 무협 만화는 구석에 밀려나 있는 경우가 많다. 40대 남성들이 주로 산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나도 딱 그 나이대가 되어가니 묘한 기분이 든다.

캐릭터들의 늙지 않는 모습이 주는 위화감

책장을 넘기다 보면 캐릭터들은 그대로인데 나만 나이 먹은 것 같아서 묘한 위화감이 든다. 한비광은 여전히 천방지축인데 나는 이제 현실적인 고민들이 더 많은 어른이 되어버렸다. 어릴 적에는 ‘나도 저런 강호에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강호보다는 당장 내일 해야 할 업무나 월세 걱정이 먼저다. 최근에 나온 ‘열혈강호: 넥스트’ 같은 MMORPG 게임들 홍보 문구를 보면 ‘청춘 무협’이라는 단어를 쓰던데, 그 청춘이 나와 함께 사라진 것 같아서 조금 씁쓸하다. 영상 콘텐츠로도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과연 그 화려한 기공들을 드라마로 잘 구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보통 이런 건 실망하기 십상이라 크게 기대는 안 한다.

결말을 향해가는 것인지 멈춰있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작가님은 이 만화를 어떻게 끝내려고 하시는 걸까. 94권까지 나왔는데도 여전히 이야기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끝이 나면 허무할 것 같아서 안 끝나는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열혈강호: 귀래’처럼 중국이나 대만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 추억이 타국에서도 인정받는 것 같아 괜히 뿌듯하다. 그런데 막상 다시 읽기 시작하니 한두 권 읽다가 졸려서 덮어버렸다. 예전처럼 밤을 새워가며 몰입하던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책장을 덮고 나니 창밖은 벌써 어두워졌다. 내일 다시 읽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기도 하고.

댓글4

  • 용묵문헌 2026.07.01

    처음에 무료 만화 사이트들을 찾아보면서 느꼈던 답답함이 다시 느껴지네요. 94권까지 연재된 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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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예전에 무협 만화에 푹 빠졌었는데, 지금은 온라인으로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단행본의 묵직한 느낌이 더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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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4권까지도 계속되는 점이 흥미롭네요. 주인공의 시선으로 보면, 단순히 횟수만 늘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의 세계관이 어떻게 변화했을지도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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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결결 2026.07.01

    90년대 책들 다시 보는 기분, 저도 완전 공감해요. 웹툰은 괜찮지만, 묵직한 종이 느낌이 다른 건 따라오질 못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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